부탄영화다. 부탄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는 영화다. 우리가 영화라고 생각하는 영화와는 좀 다르다. 사건에 의한 갈등이 아니다. 영화의 삼분의 일이 지나서야 주인공은 주 배경인 그 마을에 도착한다. 수도에서 이틀 차를 타고 가서 엿세를 걸어서 가야하는 고도 4천의 마을. 정말 풍경은 그지 없이 아름답다. 설산, 초원, 야크, 아이들. 도대체 어디까지 배우이고 각본인지 모르겠다. 국가에서 만든 홍보영화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행복지수1위지만 이민을 가고 싶어하는 주인공. 결론은 주인공이 원하는 것들은 사실 다 부탄 안에 있다는 메시지일까. 공무원, 가수, 교사가 되고 싶어하는 아이들. 그 마을과 주인공은 노래로 이어진다. 누구나 노래를 한다. 야크 목동의 노래.
교사는 '미래를 어루만지는' 사람이란다. 교사는 거의 숭고한 존재다. 온 마을 사람들이 두 시간이 걸리는 밖에까지 와서 마중하고 그리고 떠날 때 배웅한다. 술과 의식으로 맞이하고 보낸다. 정중하게 대하고 나무그릇에 음식을 담아준다. 제목인 교실 안의 야크는 사실 주인공 교사 자신이다. 촌장의 말로 그것이 정리된다. 그 야크는 교실 안에 들이도록 하는 것은 목동의 노래를 가르쳐주는 처녀이고. 즉 주인공이 교실 안의 야크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서 주인공은 그 마을에서 행복하게 살았다로 끝나지 않는다. 그건 비현실적이다.
부탄의 그 행복지수라는 것을 들을 때 약간 애매한 기분이 든다. 현실이 행복하지 않으니까 동경하긴 하지만, 라다크에 갔다와서 그곳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는 것처럼, 그렇다고 내가 현실을 바라보는 자세가 바뀌지는 않는다. 그 행복이란 것은 뭔가 차원이 다른 세계같다. 교사인 내가 이 영화 속의 수업을 환상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나는 전혀 미래를 어루만지는 사람이 아니다. 내 현실도 감당이 안 되는 사람이다. 삶의 자세와 교육의 이유, 모습을 연결되어 있다. 영화 속에서 교사는 마을 사람들이, 아이들이 기다리고 받아들이고 소중해할 수 있는 존재로 새로움과 즐거움과 기쁨을 주지만 현실 대한민국의 교사는 학교라는 제도 속에 있는 관리인 같은 존재이고 졸업을 위해 필요한 존재일 뿐이다. 그 외에 교사가 줄 것들은 다른 데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전혀 교사가 아쉽지 않다. 이미 사라져버린 것들을 아닌 것처럼 붙들고 있는 것은 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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