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고

구멍으로서의 인물

선인장아니면무엇? 2011. 10. 22. 14:56

 


  하아무가 첫 번째 소설집 『마우스 브리더』를 출판했다. 일단 잘 읽힌다. 이는 확실히 장점이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열 편의 소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극단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경우이다. 그 기이함으로 뉴스에 잠시 오를 듯한 이야기가 소설을 구성하는 모티브인 경우이다. 이 경우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인물들이 정신과(精神科)적인 불구성(不具性)을 가지고 있고 그 인물의 불구성이 소설을 이끌어나간다. 대표적인 것이 「닫힌 밤」이다. 「마우스브리더」도 마찬가지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떠올리게 하는 「두 겹의 방」도 이 부류에 속한다.

  이 부류의 소설들은 그런 인물의 불구성에서 출발해서 그 불구성이 진행되어가는 방식으로 사건이 전개되기 때문에 사건도 사회면의 기사 한 편이나 정신과 보고서의 내용을 이룰 만한 극단성을 가진다. 인물의 불구성이 생성된 원인보다는 그 불구성 자체가 소설을 이끌어가는 힘이기 때문에 결국 사건을 극단적으로 벌려놓는데서 소설은 끝나게 된다. 나타나는 현상이 전면을 차지하고, 인물 자체를 거꾸로 탐색해 가는 힘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그의 소설에서는 인물이 가장 큰 힘을 갖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인물은 오히려 전형적이고 평면적이다. 이미 너무 극단적이 되어버린 인물이, 입체적일 수 있는 가능성을 상실한 것이다. 인물 자체가 일종의 구멍이다.

  하아무 인물들의 이러한 불구성은 욕망이 사회와 갈등하는 상황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일그러지면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고도’는 인물들의 이런 욕망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 같은 존재다.

  그 외의 소설 속의 인물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들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보다 불구성이 더 두드러진다. 예를 들면 상대를 착취하는 인물과 그런 착취에 매달려 사는 인물의 구성이다. 두 인물 다 불구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백제고시원」이 그렇다. 「깨어지기 쉬운 날들」 속의 인물들은 다소 평범한 인물들처럼 보이지만 그 안의 결핍이 불구성을 만들어낸다. 「국도2호선」도 그렇다.

  두 번째 부류는 어느 정도 지식인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의 고뇌를 그리고 있는 소설들이다. 「상사화」나 「바람 구멍」이 이 경우이다. 민주화의 열기가 젊은 날을 지배했던 인물들의 현재의 무너지는 일상이 과거와 대비되고 있는 소설들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고뇌가 얼마나 깊이 있게 탐색되느냐가 관건인 유형의 소설이다. ‘현재는 상실, 과거는 열정’ 하는 식의 이분법적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바람 구멍」에서도 주인공을 둘러싼 모든 인물들이 너무 낯익은, 전형적인 인물들이다.

  열 편의 소설은 이 두 부류 사이를 오가고 있다. 필자는 평소의 버릇대로, 인물을 중심으로 소설을 읽었다. 잘 읽히는 하아무 소설의 힘은 인물에서 오는 것이라는 심증이 느껴지지만 또 다른 독자들은 다른 방식으로 하아무의 『마우스 브리더』를 읽을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들이 갖고 있는 의미의 다양한 층위를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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