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맥과이어’에 대하여
나는 이 영화에 아무 기대를 하지 않았다. 흔한 헐리우드 영화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톰 크루즈라는 흔한 흥행용 배우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잘 생기긴 했지만 연기는 보장할 수 없는 아니 연기를 영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그런 보통의 배우다. 이 영화에서도 연기를 잘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헷갈리는 과장된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내가 이 영화를 보기로 한 것은 텔레비전에서 이 영화를 잠깐 보고 난 뒤다. 남녀주인공의 사랑의 장면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여주인공이 참 귀여웠다. 아주 착하고 솔직한 여자였다. 그래서 로멘틱코메디 차원에서 이 영화를 보기로 했다. 작품성과는 좀 다른 차원에서 나는 한번씩 로맨틱코메디를 본다. 그냥 즐기는 영화다. 그런 면에서 나도 그런 로맨틱코메디를 원하고 있는 모양이다. 사랑의 본질은 심각하거나 허무하지 꿈같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은연중에 꿈같은 사랑을 꿈꾸고 있는 모양이다. 하긴 사랑에 그런 달콤한 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여하튼 나는 이 영화를 보았다. 그냥 가볍고 부담없이. 그렇게 부담없었기 때문인지 두 번이나 봤다. 다른 어려운 영화는 한 번 보고 나서 다음에 다시 봐야지 생각은 해도 금방 다시 보기는 힘들다. 그만큼 부담스러우니까.
제리 맥과이어는 일종의 인생성공담이다. 그리고 그 성공의 비결은 정직, 인간관계,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아내를 사랑하듯이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 말은 영화 대사 중의 하나다.
그리고 이 영화는 완벽한 대칭구조다. 선과 악이 분명한 것이다. 그래서 단순한 느낌이 든다. 그 기점은 제안서이다. 제안서를 쓰고 난 뒤 주인공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주인공의 차이 즉 주인공 성공의 비결은 그 제안서에 있다. 또한 제안서를 통해서 아군과 적군의 구별이 이루어지며 결정적으로 제안서를 통해서 여주인공 즉 사랑해야하는 아내를 만나는 것이다. 여자를 바라보는 관점이 애인에서 아내로 변화하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그 제안서를 쓰면서 이 영화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핵심은 그 대칭구조에 있다. 말하고자 하는 것도 그 대칭구조다. 인간이 이렇게 달라지니까 인생이 달라지더라 하는. 그 대칭의 양쪽에는 자신을 낙오자로 생각하는 옛애인과 자신의 가치를 믿어주는 아내가 있다. 옛애인은 섹스만을 함께 했지만 아내는 일을 함께 한다.
대칭 구조중 하나로 청혼이 있다. 옛애인에게 청혼했던 이야기를 여주인공이 엿듣는다. 그리고 나중에 청혼은 재현된다. 그리고 제리의 고객인 풋볼선수가 어떤 토크쇼를 보면서 저 프로그램은 출연자인 운동선수를 울린다고 투덜대며 자신은 저 프로에 나가도 울지 않을 거라고 장담한다. 그 때는 그 프로에 나갈 만큼 유명하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의 후반부에서 유명해지고 난 뒤 그 프로에 나가고 결국은 울게 된다. 자신의 연봉이 얼마나 어마어마해졌나를 듣고 우는데 참 웃기는 일이다. 그런 연봉, 돈의 액수 즉 성공을 가지고 관객의 감동을 강요하다니.
대칭구조는 그 외에도 많다. 처음 여주인공 도로시의 집을 제리가 방문했을 때 이혼녀들이 놀러와서 어수선하게 앉아있다. 그 어수선함 속에서 제리는 도로시 어디있냐고 묻는다. 그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에 다시 한 번 나오는데 이 때 주인공은 내 아내 어디있느냐고 한다. 도로시의 의미가 단순한 한 여자에서 아내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해고되고 도로시랑 나오는 엘리베이터 장면도 마찬가지다. 수화로 ‘너는 나를 채워줬어’라는 대화를 나누는 연인을 두 사람은 보게 된다. 그 수화의 의미를 들려주는 것은 도로시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도로시의 말을 제리가 반복한다. “나를 채워줘.‘라고.
남주인공의 책임감은 좀 의외이다. 그는 여주인공을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자기 마음도 모르는 상태에서 청혼을 하고 가정에 얽매인다.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에 한번씩 나오는 이런 자기 마음을 모르는 족속들이다. 어떻게 자기 마음을 모를 수 있나? 자기 마음을 그렇게 모르다가 떨어져 있고 그리고 성공을 하면서 자기 마음 한 구석이 빈 것을 보고 자신이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는다니 다소 억지스럽지 않은가. 여하튼 잘 나가는 남자들이 갖기 어려운 그 책임감이 제리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책임감이란 동시에 안정에의 욕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주인공의 특징이 이 영화의 성격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그녀는 아이가 있는 과부다. 그녀는 상당히 솔직하다. 남자들이 아주 좋아할 형이다. 내 말은 머리가 제대로 박힌 남자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머리가 빈 남자들은 허영덩어리 여자들을 좋아할 것이다. 그녀는 제리에게 가정 자체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아이와 함께 그에게 왔기 때문이다. 가정이란 나이가 어느 만큼 된 남자들에게 안정과 성공을 의미한다. 남편의 사랑이 사실은 책임감이라는 것을 감각으로 느끼며 헤어질 것을 결심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음에 든다. 영화들에서 한번씩 이런 여자들이 등장한다. 제인 에어나 파이어 라이트의 여주인공이 대표적이다. 이런 과단성이 그 여자의 가치를 만든다. 현명함이다. 현명한 여자가 정말로 남자에게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둘 중 진짜 주인공은 물론 제리이다. 남자이다. 이 남자의 변화와 인생관을 보여주는 것이니까 당연하다. 여주인공 도로시는 확실히 타자이다. 변화없이 늘 따뜻하고 착한 여자다. 김춘수의 ‘천사’라고나 할까?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는 잘 없다. 언젠가 본 제목은 모르는 리처드기어와 줄리아 로보츠가 나오는 영화는 여자가 주인공이다. 여주인공의 변화가 영화의 주내용이기 때문이다.
어떻든 이 영화는 한편으로 미국적인 영화다. 미국인의 윤리의 한 단면을 이야기했다고나 할까? 정직하게 일하며 인간관계를 중시하고 아내를 사랑하며 가정에 책임감을 가지라는 것이다. 동시에 그 일이라는 것이 ‘스포츠기록을 사랑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나는 일이다. 결코 가치있는 일 같아 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스타라는 허상을 만들어내고 ‘떼돈’을 벌게 해주는 일이다. 해고되고 난 뒤의 제리의 유일한 고객이었던 그 풋볼선수는 운동을 하면서 떼돈을 벌어줄 가난한 가족들의 영웅인 것이다. 극히 미국흑인다운 인물이다.
인간은 욕망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도 추구한다. 그 결과가 도덕이 아닐까. 도덕적인 면을 비웃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격정적인 욕망을 인정하듯이 도덕도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레비 스트로스적인 발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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