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방식으로서의 페미니즘
-『페미니즘의 도전』정희진/교양인
며칠 전에 연극을 보러 갔었다.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소외되고 구타 속에서 살아가는 네 명의 매춘여성들 이야기였다. 연극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르고 평가할 능력도 없지만 이 연극이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비극적이어서 외면하고 싶은 우리 사회의 한 모습인 것이다.
그런데 무대 위의 여성들을 관객들은 어떤 눈으로 바라봤을까? 나는 ‘저렇게 아랫배가 납작하다니’하면서 감탄했고, 저 여자는 다리가 전혀 예쁘지 않은데 왜 저렇게 짧은 치마를 입었을까?’ 하는 생각들을 했다. 나는 왜 그녀들의 비극성이 아니라 그런 시답잖은 것들을 생각했을까? 내 생각이 시답잖다는 것을 의식한 나는 그녀들의 불행의 원인을 생각해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연극 속의 악은 너무나 극단적인 악일 뿐이었고 그 악은 ‘남자’였고 배경으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사회’였다.
여성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늘 힘들다. 여성은 쉽게 눈요깃감이 될 수 있다. 그런 직업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이라는 설정 자체까지도 그렇다. 모든 인식의 주체가 남성이기 때문이다. 연극을 보고 있던 내 눈은 진짜 내 눈이었을까? 결국 내 눈은 사회에 의해서 훈련된 눈이 아닐까?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으면서 나는 힘들었다. 이 문제는 너무나 어려웠다. 적은 단순히 남성이 아니었다. 적은 내부에 있었다. 이 적은 싸워서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이 뒹굴고 같이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었다. 페미니즘은 싸움의 지침서가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이었다. 생각이 곧 싸움이다. 정희진은 페미니즘이 가장 현실적인 세계관이라고 말하고 있다. 가부장적인 시각으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것만이 옳고 중심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런 주장 자체가 가부장적이다. 이 책은 단지 다른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림으로써 기존의 시각을 상대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남성도 여성도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서로에 대해서 잘 알아야 행복할 수 있다. 또한 서로를 통해서 자신을 알고 둘 사이의 관계를 알게 된다.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에 대해서 나아가 그 관계가 바탕하고 있는 맥락에 대해서 알게 하는 생각의 틀이다.
“난 이런 책 싫어해요.”
내 책상 위에 놓여있는 이 책 제목을 보고, 한 남자 동료가 던진 말이다. 이런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 특별히 적의(敵意)를 보였다기보다는, 직설적인 그의 성격대로 솔직하게 한 말이다. 그래서 그냥 웃고 말았지만 그 순간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더 분명하게 다가왔다. 사람들은 페미니즘을 싫어한다. 여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갈등을 싫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갈등은 갈등을 인정함으로써 풀 수 있다.엄연히 존재하는 갈등을 부정할 때 그것은 억압으로 자리잡게 된다.
좋은 책은 우리를 괴롭힌다. 우리가 안주하고 있는 생각의 틀을 온통 뒤흔들어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를 감싸고 있는 그 편안함은 더 싫은 것을, 그리고 그 싫은 이유를 감추고 있는 늪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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