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제주도

선인장아니면무엇? 2017. 6. 12. 19:07

  여행이랄 수 있을지.

  제주는 관광지였다. 이 이상을 보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그 여유란 시간적 여유라기 보다는 환경의 문제였다. 막내여동생 가족이 제주에 한 달 살기(사실은 한 달반)을 하고 있어서 간 거였다. 여섯 살과 두 살의 조카의 활동 리듬에 맞추어서 움직이다 보니, 그리고 운전하는 제부의 입장에서 동선이란 걸 생각하다 보니 선택이라는 것이 어중간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동생 부부는 최선을 다해주었지만 나하고 생각 방식이 여러 가지로 달랐다. 나보고 가고 싶은 곳을 말하라고 했지만 난 어정쩡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적극적이지 못해서 최신 자료를 열심히 찾아보지 않았고 찾아볼 여유도 별로 없었고 오차피 아이들 고려, 동선 고려로 내가 말한 선택이 이루어지기 힘들거라는 생각을 지레 했다. 동생 부부는 정말 음식점을 그리고 메뉴를 신중하게 골랐다. 저렇게나 저게 중요하나 싶은데. 동생 부부는 지금 수입이 없다(내가 모르는 것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옷, 가방 등의 쇼핑에 거의 전혀 돈을 쓰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이들 먹는 것에는 신경을 많이 쓰고, 요즘 사람들이 그렇듯이 맛집에 민감하다. 제주도는 기본적으로 음식값이 비싸다. 그동안도 안 간 건 아닌 듯했지만 내가 와 있는 여섯 끼 중 마지막날 아침을 빼고 나머지는 열심히 맛집을 찾아다녔다. 중간에 서귀포에서 아이스크림집도 한 군데. 늘 내가 보기에는 양이 좀 많았다. 물론 나와 동생은 양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제부가 잘 먹는다. 그동안 정말 돼지고기 많이 먹었다. 흑돼지? 돔배고기? 얇게 썰어서 찍어먹는 소스 맛있었다. 첫식사는 오겹살, 마지막 식사는 고기국수. 내가 들먹인 거였는데 그러다 보닌 매끼 돼지고기를 먹었다. 다른 메뉴들에도, 특히 세트메뉴, 코스요리에는 늘 돼지고기가 나왔다. 고기에서 시작해서 고리로 끝났다. 첫날 메뉴에는 토마토 짭뽕이 있있는데 왜 토마토가 붙는지 알 수 엇었다. 매웠다. 고기를 먹을 때 고사리도 같이 주는 게 특이했다. 둘쨋날 아침 보말죽, 칼국수 맛있었다. 그러고 보니 해물도 꽤 먹었다. 짬뽕에도 뚝배기에도 해물이 많았다. 내가 갑각류를 좋아한다고 동생이 알고 있어서 특히 나한테 다 밀어놓았다.

  숙소는 좀, 다른 공간이었다. 한 가족이 한 채씩을 차지하고 산다. 입구가 모두 중앙의 마당을 바라보고 있다. 동생 말로는 모든 집의 아이들이 모든 집을 드나들며 이것저것 먹기도 하고 놀러가기도 한단다. 마트에 가는 집이 있으면 아이들은 이것저것 자신들이 먹고 싶은 것을 사다달라고도 한단다. 저녁에 되어서 어느 집에 큰조카가 있는지를 몰라 찾아다니기도 한단다. 특히 큰 조카의 변화가 크다고 한다. 어린이집 다닐 때와는 전혀 다른 활달한 모습을 보이고 다른 아이들과도 아주 잘 어울린단다. 마른 팔다리에 까맣게 타있었다. 아이들은 같이 마당에서 놀고 엄마 아빠 들은 모여서 수다를 떨었다. 공동육아 같은 느낌? ㅔ는 일부다처제 사회같은 모습인가 하는 말을 했지만 뭐 남자가 하나가 아니니 그건 아니고. 주로 흰색, 약간 파스텔톤. 단순한 인테리어. 괜찮았다. 화보 사진을 찍는 종류의 색상과 가구들. 좀 낡았지만. 난 이층방을 썼는데 편안했다. 동생 본래 집 생각하고 세면도구를 하나도 안 가져갔는데 비누밖에 없고, 내려가서 말하기 귀찮아서 이틀 동안 비누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다 보니 머리카락이 엄청 뻑뻑해졌다.

  제주 현대 미슬관. 김혜순의 시를 봤다. 반가웠다. 내가 글 쓰던 시절의 향수. 물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김흥수 등 들어본 듯한 이름도 있었다. 큰조카는 풀들을 꽃들을 곤충들을 보면서 느릿느릿 걸었다. 옛날에도 그했지만 물을 참 좋아한다. 분수에서 한참 떠나지 않는다. 그래도 옛날보다는 나아졌다. 달팽이를 내가 주워줬는데 애 아빠는 두고 오라고 하고 아이는 엄마한테 보이지 싶어했다. 결국 동영상을 찍어 엄마한테 보이고 놓아주었다. 미술관 주위를 걸으면서 딱 낭만적인 불륜 드라마 찍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지의 미술관, 작가들의 세련되고 특이한 작업실들, 풀꽃보다는 좀더 부티나고 이국적인 꽃들이 피어있는 정원들. 나쁘게 말하면 딱 바람나기 좋은, 그 바람을 낭만이라고 포장하기 좋은 배경 아닌가.

  이중섭 미술관. 사람이 많고 작품은 작고, 적고. 역시 편지가 더 인상적인. 그렇게 헤어져있어 더 애뜻하고 애뜻해서 오래 가고, 그 애뜻함이 끝나기 전에 세상을 떠나고. 이중섭은 멋진 사내였을 거 같다. 물론 감당이 안 되는 예술가로서의 멋진. 이중섭 미술관뿐만 아니라 제주도는 전체적으로 나무도 화초도 무성하게 우거져셔 오래되었다는 냄새를 풍겼다.

  올래 시장. 관광지 시장다운 느낌. 패키지 여행 온 느낌. 시장 안 길 가운데 물이 흘렀다. 이런 저런 관광객이 즐 선 맛집. 제주도 자체가 갖는 풍요로운 느낌도 한껏 느껴지는.

  연북정. 제일 좋았다. 동생부부는 별 느낌이 없는 듯했지만 난 이번 여행에서 가장 여행다운 곳이었다. 특히 바다 성곽과 정자. 정자 위에서 바라본 풍경. 돌아와서 검색해 보았을 때 하늘에서 바라본 정자와 그 주위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정말 오래된 그리고 버려져 있는. 옛날에 열렬한 삶이었던 그 흔적만이 남아있는. 서복이 이야기도 깃들어있는 조천진. 배가 드나들고 군사들이 있던. 연북정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 갔으면 더 좋았을 걸. 정호승의 시 하나만 알고 갔었다. 배가 드나드는 곳이라서 북쪽에 대해 더 애뜻했구나.

  학기 중에 비행기를 타는 기분도 나름 괜찮았다. 한 번밖에 없는 비행기 때문에 그것도 좀 일러서 조퇴를  낼 수밖에 없어 처음에는 좀 눈치가 보였지만 살다보면 조퇴도 낼 수 있는 일. 공항 느낌, 좁은 비행기. 일상을 벗어난다는 느낌은 확실히 좋다. 제주도에서 한 달을 보낸 동생 가족. 아이들이 자라가면서 어디서 어떻게 살지 더 고민하게 되는 모양이다. 동생은 많이 힘들어했다. 하긴 늘 힘들어했었다. 몸도 약하고. 아이들도 많이 먹지 않고, 제부는 살이 진 편인데 동생은 태생적으로 야위고 그런 자신을 닮은 아이들에 대해서 시어머니께 눈치가 보이고. 제부가 갱년기가 아니냐고 동생이 몇번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약간 아슬아슬했다. 이들도 이미 오래된 부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너나 나나 지금은 누구나 다 갱년기다. 꼭 그렇게 갱년기가 규정짓지 말고 변화도 변하지 않음도 받아들이면서 살았으면. 다섯 끼 중 두 끼는 내가 냈다. 상대적으로 좀더 저념했지만. 적극적으로 내가 더 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생한테, 허리 굴곡이 부담스러워 안 입는 티 두 개와 화장품 하나를 주고 왔다. 주고 받는 것은 실용적이어야 좋을 거 같다. 서귀포 올래시장에서 잼을 하나 샀다. 역시 난 쇼핑을 못 한다. 돌아올 때 국내선인데 면세점이라고 담배를 팔아서 ㅔ를 위해 한 보루 샀다. 일인당 한 보루만 가능. ㅔ는 이런 걸 좋아한다. 그리고 과자 두 상자. 내가 제주 간 걸 엄마가 아신다고 하기에. 집에 갔다 드려야 할텐데. 이것도 숙제다. 하나는 갔다 드리고 하나는 ㅔ와 먹고. 상자가 너무 작고 값만 빘다.

  그래도 나름 여행. 갔다오길 잘 했다. 다음에 제주에 가게 되면 좀더 느긋하게 있는 그대로만 즐길 수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