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전쟁
반지전쟁에 대한 독후감을 쓰고 싶다. 갠달프와 아라곤, 프로도는 멋있다. 우리가 ‘우리’라고 생각하는 기준은 얼마든지 넓어질 수 있다. 아라곤은 인간이다. 그러나 갠달프는 마법사이고 프로도는 호비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출신지역이나 집안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영웅의 형태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세 존재가 영웅인데 갠달프는 지혜롭고 카리스마가 있는 노인이고 아라곤은 비교적 젊으며 왕위계승자이고 무사이다. 그리고 프로도는 젊은 호비트이다. 호비트는 작은 인간이다. 이들은 맡은 역할이 다르며 각각의 중요성을 가진다.
프로도의 역할이 어떤 면에서는 가장 중요하다. 절대반지를 화염 속에 던져 넣어야 모든 상황이 종료되는 것이고 그 역할을 프로도가 맡는다. 나머지 존재들은 암흑의 제왕이 프로도에게로 시선을 돌리지 못하도록 제왕의 군사들과 싸운다. 그것이 반지 전쟁이다. 영웅들 중에서 가장 초라한 영웅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더구나 프로도가 이 역할을 수행하는 데는 하인인 샘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샘은 전형적으로 희극에서의 하인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행동은 영웅 못지 않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프로도가 만신창이가 되어 있을 때 프도로를 화염 앞까지 데리고 가는 것은 샘이다. 그렇지만 결국 반지의 사자는 프로도이다. 반지를 파괴하는 일은 프로도만이 할 수 있다. 그는 반지의 힘에 서서히 길들여지고 그래서 그것을 극복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반지의 성격이다. 반지는 단지 도구가 아니다.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무기는 도구일 뿐이다. 하지만 반지는 그렇지 않다. 반지는 그 소유자를 지배한다. 반지를 가진 자는 결정적인 순간들에 반지를 끼고 싶은 유혹을 느끼고 반지를 끼면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고 광적인 탐욕에 시달리게 된다. 일반적으로 영웅소설들에서 결정적인 무기는 정통성을 가진 주인공의 소유, 또는 그 주인공 집안의 소유였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반지는 본래 암흑의 제왕 사우론의 소유였다. 본래 그가 반지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주인공들은 소유권이 없다. 하지만 그 반지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고 그 힘은 절대로 옳게 쓰일 수 없기 때문에 파괴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존재들이 그 반지를 탐을 낸다. 하지만 반지를 탐내면 스스로 파멸하게 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골롬이다. 그는 한 때 반지의 소유자가 되었었고 그 때문에 반지에 얽매이는 운명이 되어 버리며 결국 반지와 함께 화염 속으로 떨어진다.
또한 반지를 파괴할 수 있는 화염은 바로 반지의 제왕인 사우론의 본거지, 모르도르에 있다. 그래서 프로도는 모르도로를 향해서 간다. 적의 무기를 파괴하기 위해 그 무기인 반지를 목걸이로 목에 걸고 적의 본거지를 향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초라하고 연약한 반지의 사자의 존재를 사우론은 눈치채지 못한다. 물론 반지가 그 소유주로 하여금 탐욕에 빠지게 할 때 즉 누군가 반지를 끼어서 반지가 그 힘을 발휘할 때 사우론을 항상 그 기운을 강하게 느끼기는 한다.
물론 이 소설은 나름의 한계를 가진다. 북유럽의 신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그 테두리 안에 있다. 기사의 이야기다. 그리고 노래가 많이 나온다. 그 노래는 고대의 유럽 음유시인들의 시와 같다. 이야기가 노래가 되는 즉 서서시인 것이다. 그리고 혈통이 중요하다. 모든 존재들은 누구의 아들, 누구라는 식으로 소개된다. 어느 혈통인지가 중요하다. 특히 아라곤은 왕의 혈통이다. 진정한 왕은 기적을 행하기도 한다. 그 기적은 어느 정도는 과학적이고 어느 정도는 마법같다.
또 하나 이상한 것은 마법사의 존재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마법사는 펑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를 날리면서 어떤 것을 만들어내거나 모습을 변화시키고 또 하늘을 날아다니는 존재다. 그러나 이 소설 속에서 갠달프는 말을 타고 다니고 강력한 힘으로 다른 존재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예리한 판단력과 지혜를 가지고 다른 존재들을 지휘한다. 삼국지의 제갈공명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그러고 보니 이 소설이 영국 같은 나라에서 우리나라의 삼국지처럼 읽힌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역사를 바탕으로 한 영웅들의 대서사시인 것이다. 물로 여기에서의 역사는 실제 역사 이전의 혹은 이후의 역사이지만. 나는 삼국지를 읽으면서 제갈공명을 가장 좋아했다. 이번에도 갠달프가 가장 좋다. 나는 지혜로운 사람이 제일 좋다. 또 내가 그렇게 되고 싶다.
이 소설 속에서 여자들의 존재는 미미하다. 요정여자들은 너무 숭고해서 별로 실감이 안난다. 인간공주가 나오기는 한데 역시 숭고하다. 그 공주와 아라곤 그리고 파라미르라는 청년의 사랑이 나오지만 미미하다.
아라곤과 파라미르는 이 소설 속에 나오는 가장 매력있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나한테는 별로 그렇지는 않다. 이 둘은 젊고 고귀한 존재들이다. 아라곤은 군주이고 파라미르는 영주이다. 파라미르의 집안은 아라곤이 나타나기 전까지 섭정을 맡았었다. 아라곤이 요윈공주를 사랑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사랑했지만 자신의 역할을 생각할 때 그 사랑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거기에 비해서 파라미르는 아버지의 형 보르미르에 대한 편애, 나중에는 아버지의 광기로 괴로움을 겪기도 하지만 형보다 훨씬 침착하고 지혜롭다. 결국 요윈 공주의 사랑을 차지하는 것은 파르미르이다. 글쎄 어떤 이가 더 멋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라곤은 아라곤대로, 파르미르는 파르미르대로이다. 세상은 다양하고 사람들도 다양하고 그 매력도 다양하다. 내가 어떤 부류에 속하는 것이 싫듯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어떤 부류로 넣기가 힘들다. 각자 다르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인도 그렇다. 그래서 작가론을 쓰려는 나는 괴로운 것이다.
어떤 소설이 성인용일 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이 소설에 성인용인 이유는 좀 다르다. 이 소설은 동화적인 분위기를 많이 풍긴다. 신비스러운 느낌이 들고 마법사와 왕족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너무 섬세하고 깊은 정신을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들어있다. 그래서 청소년들 중에서 어렵다고 읽지 않는 경우가 많다.
뒤로 갈수록 좀 지루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 책장을 접은 자국. 손톱인지 뭔지로 밑줄을 열심히 그은 자국 등이 보였다. 남해도서관에서 빌렸으니 남해사람이리라. 누굴까 궁금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 스타워즈와 스타트랙을 떠올렸다. 두 영화에 모두 영웅들이 나온다. 영웅들이 나오는 영화는 흔하다. 하지만 이 두 영화의 영웅은 나에게 특별했다. 특히 나는 스타트랙의 주인공들을 아주 좋아했었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 나오는 영웅들은 스타워즈의 영웅들을 더 많이 닮았다. 스타트랙의 주인공들이 더 현대적이고 지적인데 비해서 스타워즈의 영웅들은 고대인들같은 충성심이나 비극성이 더 많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