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책임과 용기

선인장아니면무엇? 2011. 6. 17. 11:42

 

책임과 용기

즐거운 나의 집/공지영/푸른숲


  자식 때문에 이혼하지 않고 산다는 부부는 자식에게도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너희도 자신의 행복보다는 남을 위해서 참고 살라고 말이다. 또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말라고 말이다. 고3 담임은 자신이 하는 일이 학생을 위한 거라고 변명하지만 결국 입시교육을 강화하는데 일조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식을 위해 참고 산 사람은 자기 자식이 만일 그런 상황이 되어도 참고 살기를 바랄까? 아마 그럴 것 같다.

  내가 특별히 공지영이란 소설가의 소설을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 책을 산 것은 사실 저급한 호기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세 번이나 이혼한 엄마와 같이 사는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그런 아이들에 대해서 그 엄마는 어떤 마음이 될까? 성(姓)이 다른 세 아이는 서로에 대해 어떻게 느낄까?

  이 소설은 고등학생인 큰딸 위녕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에는 좀 유치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덮어두고 있다가 문득 눈에 들어오기에 다시 읽었다. 유치함을 인정하고 읽으니 있는 그대로의 장점이 보이면서 편하게 읽혔다.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위녕이지만 당연히 나는 그 뒤의 공지영을 의식한다. 사실 내가 호기심의 눈을 번득였던 건, 자신의 사적인 문제를 떠돌리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이 소설을 쓴 공지영의 욕망이었을 것이다. 공지영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위녕은 왜 엄마가 아빠를 참지 못했는지, 또 왜 아빠는 엄마를 참지 못했는지, 그리고 그런 엄마와 아빠의 서로 다른 면이 자신의 속에 어떻게 들어있는지를 본다. 이런 갈등 속에서 엄마와 아빠를, 그리고 아버지가 다른 동생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알아간다.  그것은 결국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세워가는 과정이다. 이 소설의 시간이, 위녕이 고등학교 2학년생으로 아빠의 집에서 엄마의 집으로 옮겨오는 때부터 시작되어 3학년을 지내고 대학입시를 결정하는 시기까지인 것과 잘 어울린다. 

  중요한 건, 가족은 꼭 엄마와 아빠, 그리고 그 핏줄인 아이로만 구성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도 별로 새로운 주제는 아니다. 한국 드라마들은 아직 약하지만 ‘리빙 노말’ 같은 외국영화들을 비롯해서 수많은 영화들은 이미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제시해 왔다. 가족의 형태는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가족이란 저녁 먹고 같이 집 앞에 나가 술 한 잔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구절이 나온다. 가족을 필연적이고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일지도 모른다.

  주위 사람에게 ‘내가 이혼을 세 번 하고 성이 다른 세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그런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 같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자식들이 상처받을 것이라는 말이 어김없이 제일 먼저 나왔지만, 그 중 한 사람은 ‘어떤 일에는 상황이 있고 그 상황을 배제하고 뭐라고 말하기가 뭣하다’는 말을 했다. 참 조심스러운 주제다. 비난받기 쉬운 주제다. 이 글을 쓰면서 계속 변명을 하려고 하는 나 자신을 느낀다. 내가 이혼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비난받을 만한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혼한 사람에 대해 ‘책임감 없다’가 아니라 ‘용기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