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여행
할리데이가 이런 것이구나 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나와서 하염없이 걷거나 하염없이 앉아있었다. ㅔ와 있는 것은 편하다. 둘이서 여행하면 싸우게 된다지만 ㅔ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여성성을 경쟁할 필요도 없고 영어실력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영어를 못 해도 ㅔ는 마구 말을 한다. 그래서 솔직히 나는 편하다. 그리고 숫자에 약하고 계산을 못 하는 나에 비해 ㅔ는 정반대다. ㅔ와 함께 여행을 하면 결국 나는 안일하게 된다. ㅔ가 다 해 주니까. 나는 아무 생각 안 하게 된다. 그래서 자유여행 능력을 기르고자 하는 의도는 퇴색되지만. 앞으로도 ㅔ와 여행한다면 그런 능력은 필요없을 듯.
여행해 보면 단순한 도시는 없다. 방콕도 역시 복합적인 도시다. 관광객의 비율이 이렇게 높은 곳은 처음이다. 동남아이면서 다른 동남아와 다른. 사실 동남아의 도시들은 어느 정도 서구와의 역사적 연관성 속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방콕은 더 심한 것같다. 특히 관광객. 백인 노인들. 마사지삽에 붙어 있는 no sex라는 구절. 근데 카오산로드 맛사지는 정말 잘 하더라. 카오산로드에 대한 환상을 사라졌다. 뭐 점점 약해져가고 있었지만. 비스듬지 앉아 맥주 한 잔 기울이고 있는 수많은 중년의 백인들. 약간 들떠서 돌아다니는 온갖 인종의 젊은이들. 왕궁과 사원은 그냥 왕궁과 사원이다. 내게 아무런 역사적인, 종교적인 지식이 없어서이겠지만. 화려하지만 그 이상은 알 수 없는. 약간 촌스러운 국왕의 사진들. 내 여행 스타일이 안일하긴 하다.
쇼핑에 대해서는 좀 안정감이 생겼다고나 할까. 이도 ㅔ와 여행하는 이점이다. 내가 어떤 물건을 선택해서 어떻게 사는가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 눈을 의식했는데 ㅔ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스킨로션, 베가방, 티, 과자(부모님 드릴 것) 샀다. 음식은 별로였다. 이제 호텔 아침 뷔페에는 아무 기대감이 없고(달걀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먹은 음식이 태국 음식인지 서양 음식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한식 두 번 먹었다. 현지음식을 먹어야한다고 주장에 대해서 별 생각없다. 먹고 싶으면 먹고 그렇지 않으면 안 먹는거지. 지 마음이지. 음식은 먹고 싶으면 먹는 것이다. 여행에서의 의무감처럼 생각하는 것도 강박이다.